공상 과학 영화 분야에서 기념비적인 - TopicsExpress



          

공상 과학 영화 분야에서 기념비적인 작품 대체로 스탠리 쿠브릭(Stanley Kubrick)의 영화에는 많은 논란과 해석이 난무한다. 그가 다루는 작품의 주제들이 늘 심오하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고 관객들이 거장이란 권위에 짓눌려 그의 작품들을 오직 예술적 가치로만 보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 은 관객들에게 찬사와 거부감을 동시에 부여하는 작품이다. 특수 영상과 고전 음악의 조화, 유인원이 공중으로 던진 골각기가 우주선으로 전환하고 인공 지능이 인간에 대항하는 장면 등은 가히 영상 철인(哲人)다운 발상이다. 그러나 그 장면들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감독의 주제는 난해하기 이를 데 없다. 감독의 의도적인 시작인지 DVD 제작사의 편집인지 알 수 없지만 의 시작은 수 분 동안 아무런 화면도 없이 그저 음악만 흐른다. 감독의 의도적인 시작이라면 이 부분은 우주 창조 이전의 혼돈을 의미한다. 다음에 이어지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각종 자막(제작사와 영화 제목 등)을 우주에서 솟아오르는 지구의 장면에서 보여준다. 영화의 시작을 우주와 지구 탄생을 시간적으로 배열한 편집이다. 이때 리하르트 슈트라우스(Richard Strauss)의 란 곡이 흐른다. 영상과 음악의 조화가 퍽 인상적이다. 영화의 본격적인 시작은 유인원들의 생활이다. 동물과 하등 다를 바 없는 그들의 생활이 별다른 사건의 전개 없이 보여진다. 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깬 유인원들은 자신의 앞에 갑자기 세워진 검은 비석에 놀라 당황한다. 검은 비석은 이후 21세기의 인간들이 목성으로 향하는 이유이기도 하고 영화의 끝에서 다시 등장한다는 점에서 의 핵심을 이루는 내용이다. 문제는 갑작스런 검은 비석의 출현은 유인원들의 생활과 관련지을 때 너무나 생뚱맞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검은 비석에 대한 해석은 다양할 수밖에 없다. 검은 비석에 대한 무수한 해석 중 필자의 견해는 시간과 공간을 관통하는 불변의 속성에 대한 상징으로 본다. 이는 우주를 지배하는 보편적 원리일 수도 있고 고래로부터 이어오는 불변의 진리일 수도 있다. 유신론자에게는 신을 의미할 수도 있다. 필자의 견해에 동의한다면 결국 은 21세기 인간들이 원시 시대로부터 삼라만상을 지배하는 원리(검은 비석)를 탐험하기 위해 목성까지 항해하고 귀환한다는 내용이다. 주인공이 검은 비석 앞에서 최후를 마치는 장면은 여전히 그 원리는 우주와 생명을 지배한다는 내용을 상징한다. 다시 말해 우주든, 생명이든 생성하고 성장하고 쇠퇴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진화한다는 점이다. 유인원들의 생활 부분에서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한 유인원이 동물의 뼈를 쥐고 주위의 뼈를 이리저리 두드리는 장면이다. 유인원은 처음에 주위의 뼈들을 툭툭 내려치다 우연히 힘을 주어 내리쳐 본다. 순식간에 뼈가 부서지자 유인원은 더욱 힘을 주어 주위의 뼈들을 내리치기 시작한다. 이 장면들에서 장엄한 음악이 흐른다. 앞에 나왔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바로 그 곡이다. 인류가 최초로 골각기를 도구로 사용하던 순간을 극적으로 묘사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 감독은 같은 음악을 통해 인류의 도구 사용을 지구의 탄생에 버금가는 사건이란 점을 관객들에게 전한다. 이후 유인원들은 이 골각기를 수렵의 도구로서, 전쟁의 도구로서 사용하기 시작한다. 골각기를 통해 전쟁에서 승리한 어떤 유인원이 공중으로 골각기를 던지자 화면은 2001년 우주 공간으로 급전환한다. 공중으로 올려진 골각기는 진보하는 인류의 도구 발전 역사를 함축한다. 수 만년 동안 이룩한 도구의 발전사를 일체의 군더더기도 없이 이렇게 간결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새삼 스탠리 쿠브릭의 예술적 재능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많은 관객과 평론가들이 영화사의 명장면으로 언급하는 부분이다. 우주선에서는 미래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장면들 대부분은 오늘날 익숙하게 느껴지는 내용이다. 일례로 주인공이 지구에 남은 가족에게 화상 전화를 이용해 안부를 전하는 장면이 나온다. 오늘날에는 DMB나 영상 통화가 보편적이기 때문에 그런 장면들이 관객들에게는 덤덤하게 전해지겠지만 영화 제작 당시가 1968년이란 점을 고려한다면 실로 놀라운 미래 생활상의 묘사가 아닐 수 없다. 스탠리 쿠브릭이 영화를 제작하면서 얼마나 치밀하게 과학자와 미래학자들의 견해를 반영했는가를 보여주는 장면들이기도 하다. 미국 우주항공국(NASA)에서는 유인 우주선 아폴로 9호 발사 계획을 진행하면서 이 영화에서 묘사한 진공 상태의 우주인 등을 철저히 분석했다고 한다. 의 주제는 아니지만 관객들이 중요하게 언급하는 내용이 인공 지능의 존재와 인간에 대한 반란이다. 개인적으로도 가장 흥미롭게 본 부분이기도 하다. 목성을 향하는 우주선에 우주인 자격으로 탑승한 할(HAL 9000)은 인간이 아닌 인공 지능이다. 그는 손과 발이 있는 기계가 아니다. 그저 머리라고 부를 수 있는 부분만 있다. 그렇다고 고개를 돌릴 수 있는 머리도 아니다. 그러나 할은 인간과 자연스런 대화를 주고 받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우주선의 제어를 담당한다. 할은 자신이 기계라는 점을 잘 안다. 그러나 기계이기 때문에 자신의 사고와 판단은 늘 정확하다고 생각한다. 그야말로 자신에게는 어떤 인간적인 오류가 없다고 확신한다. 우주 여행 중인 어느 날, 선장 보먼(Bowman)과 승무원 풀(Poole)은 우주선의 제어와 관련하여 할의 오류를 의심하고 이를 점검하자는 의견을 주고 받는다. 할은 대화 중인 두 우주인의 입모양을 통해 그들이 자신을 의심한다고 생각하고 인간의 지시를 거부하고 임의의 판단을 시작한다. 인공 지능의 반란이었다. 할의 공격 과정은 섬뜩하다. 손발이 있는 것도 아닌 기계가 제어 명령을 통해 동면 중인 인간들을 살해하고 우주 유영에 나선 풀을 제거한다. 기계에 의존하는 인간의 나약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들이기도 하다. 그러나 할도 결국 기계의 한계에 직면하면서 보먼에 의해 제거당한다. 메모리가 빠질 때마다 마치 녹음 테이프가 늘어지는 것과 같은 소리를 내며 죽어가는 할의 최후 과정이 인상적이다. 고도의 도구에도 과연 “인격(인권)”이 있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제임스 카메론(James Cameron) 등과 같은 많은 영화인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은 당시성을 고려할 때 실로 획기적인 작품이 아닐 수 없다. 후대의 공상 과학 영화에 미친 영향까지 감안하면 더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이 영화의 전개 과정은 일정 정도의 인내력을 요구한다. 오늘날 빠른 전개와 첨단 기법으로 무장한 영화에 길들여진 관객들이라면 심한 거부감을 동반할 수 있다. 은 영화에 진지한 관객이라면 한 번쯤 보아야 할 필독서와 같은 작품이다. 그러나 처럼 늘 가까이에서 반복해 접할 수 있는 작품은 아니다. 한 번쯤은 반드시 보아야 하지만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은 영화가 이른바 저주 받은 영화라고 가정한다면 은 분명 그런 영화다. 영화에 일가견이 있다고 스스로 느끼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 도전해 보기 바란다. 2009년 7월 19일
Posted on: Fri, 06 Sep 2013 16:00:53 +0000

Trending Topics



Recently Viewed Topics




©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