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미정 (목요일 두번째) 고래는 왜 강에서 - TopicsExpress



          

제미정 (목요일 두번째) 고래는 왜 강에서 죽었을까 / 제미정 검은 타일이 모래사장처럼 깔려있는 욕실에서 옷을 벗는다. 물이끼로 얼룩진 거울 속 검푸른 등 유난히 배만 하얀 나는 자라도, 자라도 언제까지나 너에겐 꼬마향고래 잃어버린 미끈한 발을 욕조에 담그고 어느새 난 바다에 잠겨있다. 눈썹 위로 비가 내리고 깊이를 알 수 없는 너에게로 가기 전 숨을 고른다. 어둑어둑 검어지는 천장엔 물병자리 눈물의 수압을 밀어내며 꼬리지느러미를 힘껏 펼치는 이유를 넌 아니, 텔레파시 같은 건 이제 말을 듣지 않아 난 길을 잃고 점점 얕아지는 물길조차 눈치 채지 못한 채 믿었던 꼬리지느러미조차 너의 시간은 역류하지 못한다. 힘을 다해 마지막 초음파를 쏘아올리고, 이제 나는 달려간다. 뭍이 다가오고 등에 새겨진 파도의 문장이 수면 위로 떠오를 때 울컥 토해 낸 바다, 숨소리 잦아든다. [Poetry Note] 언제였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수십 마리의 고래들이 강가에서 떼죽음을 당했다는 뉴스를 보았다. 무엇이 고래들을 강가로 이끌었던 걸까. 사람들은 석유 탐사와 같은 바다 속 소음 증가 때문에 청각 교란을 일으켰다거나, 강풍으로 인해 방향 감각을 상실했을 거라고 추측했지만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은 채 미스터리로 남았다. 뉴스의 장면을 보는데 속절없는 눈물이 뺨을 적셨다. 고래는 내 자신이었다. 길을 잃고 점점 얕아지는 물길조차 눈치 채지 못한. 사랑이라고 확신했던 감정이 순식간에 애증으로 변하는 일. 아무리 놓쳐버린 시간을 따라잡으려 해도 나는 그 시간들을 역류하지 못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거칠었던 호흡도 눈물도 서서히 잦아들었다. 맹목적으로 좇던 시간은 내 앞에 울컥, 바다처럼 쏟아졌고 더 이상 난 텔레파시를 믿지 않게 되었다.
Posted on: Thu, 22 Aug 2013 04:41:3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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